예안면의 문화

동방의 주자 역동 우탁

  • 역동우탁선생묘소 (소재지 : 안동시 예안면 정산리)

역동 선생(1262~1342)은 향공진사 휘 천규의 아들로 충북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에서 태어나셨다.
선생의 휘는 탁, 자는 천장 또는 탁부이며, 호는 단암 또는 백운당이며, 시호는 문희이다.
세칭 역동(易東)이라고도 한다.

연보

년도 내용
1263년(1세) 충북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 출생.
1278년(17세) 17세에 향공진사(鄕貢進士)가 됨.
1290년(29세) 정가신(鄭可臣)이 주관한 과거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함.
1291년(30세) 영해사록(寧海司錄: 지금의 경북 영덕의 지방관)으로 임명됨.
1308년(47세) 감찰규정(監察糾正)이 됨.
충선왕이 부왕인 충렬왕의 후궁이었던 숙창원비(淑昌院妃)를 범간(犯奸)하는 패륜을 자행하자, 이튿날 도끼를 들고 임금 앞에 나아가 자신의 말이 잘못되었을 때는 목을 쳐도 좋다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림.
년도미상 진현관(進賢館) 직제학(直提學)에 임명
년도미상 성균관 좨주(종3품)로 승진
1342년(81세) 2월 7일 81세로 생을 마쳤다.
- 회헌 안향(1243-1306)의 문하에서 수학

역동서원을 창건하신 퇴계선생(1501~1570)께서는 "역동서원기(易東書院記)"에 "역동선생의 충의대절은 이미 천지를 움직이고 산악도 움직일만하고 경학의 밝음이나 진퇴의 정당함은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바 있으니 후학의 사범이 되어 백세의 묘향을 받아야 할 분이시다."라고 쓰셨다.

선생께서는 만년에 예안에서 서남쪽 오리 지점, 행정구역으로 안동군 예안면 선양리에 은거하셨다.
지금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었지만, 후세 사람들은 이곳을 선생이 도학, 충의, 절조의 덕을 실천하신 곳이라 하여 지삼의라 불러 후세인의 사표가 됨을 기리고 있다. 선생의 대표적 배향서원으로는 역동서원(안동대학교내에 위치)과 구계서원(영남대학교내에 위치)이 있다.

고려 말에 우탁(禹倬)이 지은 시조.

탄로가(嘆老歌)

고려 말에 우탁(禹倬)이 지은 시조. 歎老歌(탄로가)로 표기하기도 한다. 모두 3수로 늙음을 한탄한 주제를 담고 있다. 작자가 충선왕의 패륜을 극간하다가 진노를 입어 예안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며, 새로 들어온 주자학을 연구하다 보니 어느덧 백발이 되어 인생의 늙음을 안타까워하여 읊은 것이다.

< 탄로가(嘆老歌) > -우탁-
한 손에 가시를 들고 또 한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白髮)막대로 치려터니
배발에 저 몬져 알고 즈럼길로 오더라

“한 손에 가시를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로 시작되는 작품은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늙음을 인위적으로 막아보려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을 처절하게 노래하였고, 춘산에 눈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데 없다."로 시작되는 작품은 자연의 힘을 빌려 인간의 삶을 변화시켜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봄바람이 눈덮인 산을 녹이듯 자연의 위대한 힘을 빌려 인간에게 찾아오는 백발을 없애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았다.

"늙지 말려이고 다시 젊어 보려터니"로 시작되는 작품은 늙지 않고 젊어보려는 욕구에도 불구하고 찾아드는 백발은 어쩌지 못하고 젊은 여인을 탐하는 자신의 인간적 욕구를 "이따금 꽃밭을 지날 제면 죄지은 듯 하여라."라고 솔직히 고백함으로써 죄책감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 늙음을 가져오는 자연의 질서에 맞서보려는 안간힘과 죄책감이 인간미를 더해주고 있다.

농암신도비

1566년에 대제학 홍섬(洪暹)의 비문과 송인(宋寅)의 글씨로 세웠다.
분강서원과 애일당 사이에 위치하였으나 안동댐 수몰로 예안면 신남리로 이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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